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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31. 21:12

'살아가는 것'이 가지는 의미 지적(知的)2013. 7. 31. 21:12

  왜 사는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인생에서 계획하고 있는 여러가지 단,장기적인 목표들을 나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적어도 나에게는) 답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죽기 싫으니까'. 내가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사는 건 아니지만, 이 세상이 그럭저럭 살아갈 만한 곳이라고 생각할 정도는 된다. 모든 생명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며, 인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살 시도 역시 자신을 보호하려는 시도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심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을 경우에 인간은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데, 내 생각에 그런 충동은 지속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견딜 수 없게 된 뇌가 다른 신체 부위의 손상을 초래함으로써 주의를 돌려보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나타나는 것 같다. 즉, 충동의 이유는 자해와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왜 '적당한 수준의' 고통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걸까? 아마도 그건 모든 것을 과장해서 생각하기 쉬운 동물 뇌의 특질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는 뇌의 의도를 잘못 해석한 '이성'이 죽을 때가 되었다고 멋대로 판단해서 그 생각이 자살 시도로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해 후에는 속이 시원하고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메커니즘일 것이다. 그렇다고 자해가 권장되는 건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효과를 믿지 않지만 의사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으며, 근원적인 스트레스를 제거해야 어느 정도 자해-자살 충동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단지 '죽기 싫어서' 사는 걸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틀린 답은 아니다. 하지만 그 표현을 단순히 '죽음이 싫다'고만 해석하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살아가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많이 찾는 편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나 푸르른 자연, 태연스럽게 활보하는 귀여운(!) 야생 고양이들, 저녁때면 친구들에게 거는 '수다용' 전화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즐거움들을 누리고 있는데 이 즐거움들을 누리기 위해 산다고 해도 나쁘지 않은 답이 될 것 같다. 내 진로와 전공은 일단 생계, 즉 삶을 위한 것이니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데 살아가다 보면 일이 삶의 목적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런 현상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슬플 거라고 생각한다. 왠지 '나는 살기 위해 일하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라는 말을 평생 달고 다닌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결론? 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산다. 끝!

 

2013.07.3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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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페르불가투스